청년, 월세 난민 되다.

청년 월세 난민 되다 청년 월세 난민 되다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 평균 월세

(출처: 다방, 단위: 만원)

서울 대학가 원룸촌이 ‘신(新)쪽방촌’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 대학가에는 축적한 자산이 없는
청년 세대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돈을 버는
‘빈곤 비즈니스’가 한창이다.

쪼개기

불법

불법 쪼개기 건물82.5%전수조사 대상 건물
79채 중 65채

한국일보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한양대 인근 원룸 건물의 ‘불법 쪼개기 실태’를 전수 조사했다. 원룸 전체 건물 751채 가운데 10가구 이상 거주하는 79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 봤더니, 그 중 65채(82%)가 불법 쪼개기 한 ‘신쪽방’인 것으로 드러났다. 10채 중 8채 상당이다. 이미 위반건축물으로 등록되어 있는 경우도 28채(35.4%)에 달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원룸에 버젓이 비싼 월세를 내고 살면서도 ‘주거 빈곤’의 경계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청년들의 현주소다.

‘우편함’과 ‘계량기’는 알고 있다.

외관으로 확인 가능한 우편함과 계량기는 실제 한 건물에 몇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취재팀은 사근동을 드나들며 건물의 우편함과 계량기 수를 기입해 건축물 대장과 일일이 대조했다.

1가구 단독주택이 34가구 원룸으로...

34가구 층당 11가구, 4층 독서실, 3층 독서실, 2층 독서실, 1층 카페

34가구
층당 평균 11가구

1층에 카페가 있는 한 건물은 2층부터는 원룸으로 사용되고 있다. 입구에는 34개 우편함이, 외벽에는 34개 가스계량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각 방문에 붙은 호수도 이와 일치했다.

34가구가 사는 이 건물은, 건축물대장 상으로는 단 한 가구만이 사는 단독주택과 근린생활시설로 기재돼 있다.

2~4층은 독서실로 등록되어 있지만, 독서실의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 없다. 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법정 주차장을 필수로 지어야 하는데, 아까운 땅에 주차장을 짓느니 근린생활시설로 위장해 실제로는 원룸을 만드는 편법이다. 해당 건물은 이미 올 1월에 위반건축물로 적발됐으나, 버젓이 원룸 임대업을 계속하고 있다.

불법 쪼개기 방식

불법 쪼개기는 크게 2가지 방법으로 많이 이뤄진다.

1. 노후한 다가구 주택을 리모델링 하면서 원래 존재하지 않는 방을 둘이나 셋으로 나눠 ‘호수(戶數)’ 만들기

2. 신축 건물을 지으면서 법에 맞게 사용 승인을 받은 뒤, 이후 더 많은 세대로 나눠 방을 쪼개기

쪼개기 전월 50만원월세 50만원 x 1가구

쪼갠 후월 120만원월세 30만원 x 4개 원룸

2.4배

서울 불법 방 쪼개기 적발 현황(단위 : 건)

  • 2015
    350
    46
  • 2016
    447
    58
  • 2017
    566
    57
  • 2018
    645
    41
  • 2019
    682
    38
적발누계
시정
출처 : 서울시 자료 (한국일보 정보공개청구)

올해 9월 말 기준, 서울의 불법 방 쪼개기 적발 누계는 682건이다. 지난해까지 적발됐으나 시정되지 않고 있는 건수(604건)와 올해 새롭게 적발된 건수(78건)를 합친 수치이다. 불법 방 쪼개기는 적발돼도 대부분 시정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명확하다. 현행 건축법상 방 쪼개기 된 건물에 대해서 시정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보통 이행강제금보다 원룸 쪼개기로 벌어들이는 월세 수익이 훨씬 많다 보니 실효성에 뚝 떨어진다.

유리벽 화장실에 3평짜리 원룸…
추락하는 주거 환경

23.1㎡(7평)
1990년대 후반 원룸, 오피스텔 기준의 가장 작은 면적
14㎡(4.2평)
국가에서 권고한 1인 가구 최소주거기준
12㎡(3.6평)
2019년 현재

현재 원룸들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원룸, 오피스텔 기준의 가장 작은 면적이 23.1㎡(7평)이었지만 최근엔 나라에서 권고한 1인 가구 최소주거기준 14㎡(4.2평)보다도 더 작은 12㎡(3.6평)까지도 ‘풀옵션 빌트인’(싱크대와 냉장고, 인덕션, 세탁기와 에어컨, 붙박이 책상 등)을 갖췄다는 이유로 임대료를 높여 거래된다.”

- 수상건축 박태상 소장

‘불법 쪼개기 원룸’ 내부. 4.5평 방엔 세탁기, 냉장고, 전기조리기구, 책상, 침대가 빽빽이 놓여 있다.
공간이 없어 싱크대 위에 드라이기, 로션 등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다.

원룸들에 하나 둘 불이 켜지는 16일 오후 10시가 되면 어떤 음향기기도 켜지 않았지만, 방엔 온갖 소리가 모여들었다. 어디선가 텔레비전 소리는 벽을 뚫고 넘어왔고 옆방의 중국인 유학생 통화 소리까지 고스란히 전달됐다. 같은 층 누군가가 ‘쾅’ 하고 문을 닫으면, 다른 방에도 진동이 울렸다.

세면대와 맞붙어 있는 변기는 앉기 힘들 정도로 여유가 없었고, 욕실에 환풍기나 창문이 없어 침대 위 벽에는 검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지금, 진짜 집에 살고 있나요?
쪽방과 원룸 사이… 경계에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

취재진은 “당신의 원룸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 1,000통을 직접 우편함에 배달했고, 접수된 제보를 통해 ‘신(新) 쪽방’에 사는 이들과 연락이 닿았다.

제보자들과의 인터뷰를 채팅 형태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채팅 화면에 대고 스크롤 하시면 인터뷰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신의 '집'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저희 우편물을 보시고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하기 전에 각자 소개부터 부탁드려요.
A씨
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27살 남성입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에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살았고, 사근동에 들어오게 된 건 4년이 넘었습니다.
B씨
안녕하세요? 현재 32살이고 한양대학원 박사과정 중입니다.
C씨
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기자
그럼. 먼저 제일 기본적인 것부터 질문드릴게요. 현재 살고 계신 원룸의 월세와 평수는 어떻게 되세요?
A씨
보증금 4천, 월세 15만원에 살고 있습니다.
C씨
원래 천에 사십으로 나왔던 집인데 500에 45로 맞춰서 살고 있어요. 평수는 정확하게 몰라 7평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기자
살고 계신 집이 불법건축물이라는 거 알고 계셨나요? 집 구하실 때 등기부등본, 건축물 대장을 떼본 적 있으세요?
A씨
제가 여기 계약 하기 전에 등기부등본을 떼어 봤고 그때 근저당이 잡혀 있다는 그런 얘기를 집주인분한테 물어봤던 것 같아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라는 걸 계약서 쓸 때 주게 되어있더라고요. 거기 위반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당시에는 이 정도 조건의 신축건물을 구할 수가 없어서. 한 2주동안 알아봤는데 그 혼자 알아보는 과정 자체가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고민하지 말자 했어요.
B씨
등기부등본이랑 근저당 잡힌 건 확인했는데 문제가 없어 계약했어요.
C씨
반지하부터 3층까지 있는 건물인데, 1층에서 한쪽 면만 원룸으로 쪼개서 리모델링했더라고요. 원래 한층에 두가구 총 8가구인데, 우리 층은 한가구를 원룸 4개로 돼 있어요. 따로 건축물 대장 떼어보거나 한 건 아니에요.
기자
집주인과 교류는 있으세요? 불편한 점을 말하면 잘 고쳐주시는지?
C씨
집주인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어요. 처음에 들어왔을 때 방충망에 문제가 있어서 벌레들이 계속 방으로 들어오길래 연락한 적이 있었는데 "내일 갈게요" 하더니 안 오시더라고요. 3번 정도 연락했는데 아예 안 오셨어요. 벌레 때문에 문도 못 열고. 결국은 안 고쳐줬어요.
기자
사근동에 집을 구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B씨
전 타지에서 왔기 때문에 그건 몰랐어요. 사근동 근처에 유학생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석사까지는 지방에서 했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를 몰랐던 거죠.
C씨
사근동이 다른 데보다 저렴해요. 사근동 위치 생각 안하고 가격 보고 결정했어요.
기자
집 구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있을까요?
A씨
제가 고시원에서도 하숙에서도 살아봤는데 진짜 중요한 게 창문이더라고요. 그래서 창문 큰 집 구하려고 노력. 그래서 창문 있는 집으로 몇 군데를 골랐고, 그러다 보니까 단독주택이라고 표시가 되어있는 것. 그리고 제가 본 건 아마 건축물대장상 위반 건축물 여부를 본 것 같아요.
B씨
인터넷에서 보면 사이즈가 나오는데 딱 보면 허위광고겠구나 감을 잡아요. 너무 작더라고요. 처음 갔던 집은 예상 평수는 5,6평 되어 있는데 침대, 주방, 딱 이렇게… 고시텔 수준이더라고요. 그렇게 작은 집도 많고 반지하도 너무 많았어요. 가격대 맞추려다 보니 해가 들어오는 반지하라고 해서 보니 요만한 화장실 창문 뿐이고… 그나마 해가 들어오는 집들 찾으면 월세 40이 넘고요. 가격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어차피 집에서 잠만 자고 나오고 잠도 안자는 경우 많으니까요. 다행히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해도 잘 들어요.
C씨
부동산에서 보여준 방들이 다 비좁고, 문제가 하나씩은 있더라고요. 너무 답답해 보이는 원룸도 있었는데 방에 책상, 침대, 싱크대 넣으면 지나 다닐 통로만 남더라고요. 좋은 고시원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도 거기가 500에 40정도였어요. 제가 생각한 맥시멈이 500에 45였는데 구하려고 하니까 너무 없는 거에요. 그래서 그냥 눈을 낮추고 현실적인 집으로 보게 됐어요.
기자
지금 집에 사시면서 불편한 점 있으세요?
A씨
고기 구워먹을 때 대문을 열어야 환기가 돼요. 아니면 여기가 연기로 자욱해져요. 환기라는 게 양 쪽이 뚫려 있어야 되는 거더라고요. 방에 오래 있을 때는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이상한 냄새도 나잖아요. 그래서 현관을 열어놓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햇빛. 세시에 한 줄기 햇살이 딱 들어오는데 그때만 햇빛을 볼 수 있어요. 막혀 있어서… 벽 위에 곰팡이 피어있는 것도 아마 햇빛이 잘 안 들어오고 환기가 안 돼서 그런 거겠죠… 곰팡이가 있으니 몸에 안 좋겠죠?
겨울엔 좀 추워요. 단열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난방을 엄청 세게 틀어놓고 겨울엔 추워서 바닥에서 자고. 전기 장판은 제가 또 겁이 많아서 못 쓰겠고요. 여름에는 에어컨을 계속 틀면 한 4-5만원, 많으면 7-8만원까지 나오고. 가스비도 많이 틀면 10만원. 비싼 편이죠. 원룸 치고는. 지금 같을 때는 에어컨도 안틀고 난방도 안 트니까 얼마 안 나와요. 한 4-5만원 정도 나오는 것 같아요.
기자
(인터뷰 중에) 옆방 소리가 다 들리네요?
A씨
다 들리고 신음소리도 들리고… 방문 닫는데 거기 서있으면 진동도 느껴지고. 그리고 앞집에 애인이 드나드는지... 저는 괜찮았는데 밑에 분이 되게 괴로웠나 봐요. 그래서 저기 보면 ‘조심해주세요‘ 이런 게 붙어 있어요. 이 밑에 살던 분은 소음에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나갔어요. 담배연기도 다 들어오거든요. 전 담배를 안 피워서 담배를 되게 싫어하는데, 그런 것도 되게 불편하더라고요.
C씨
저희 층 네 곳 중에 한 곳은 제가 살고 나머지는 중국인이에요. 생각보다 시끄러운 건 없는데 전자레인지나 화장실 물내리는 소리까지 들리더라고요.
기자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 그런 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씨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왔을 때 공간을 내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성친구든 동성친구든 간에. 여기 2016년 추석 때 엄마아빠가 와서 같이 잔 적이 있었거든요. 좁은 방 한 칸이라도 같이 살 수 있으면, 그게 내 마음의 안식처라면 집이겠죠.
B씨
지금 집은 씻는 데죠. 그냥 짐 보관하는 곳… 집에 소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릴 때부터 바깥 생활을 오래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집에서 쉴 때 소파에 누워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편히 쉬었으면… 지금은 침대 말고 공간이 없어요. 쉬는 날에는 일어나서 청소하는 정도에요… 밥먹을 땐 접이식 식탁 펴서 밥 먹고 정리하고. 지금 집은 씻고 자는 곳에 불과해요. 제가 생각했을 땐 이렇게 불편하게 사는 건 오래 살아봤자 2년 정도? 입사때까지만 버티자 생각하고 있어요.
C씨
집은 남 눈치 안보고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죠. 자취하다보니 원룸에 친구들이 많이 오는데 소음 신경 쓰고 하느라 제가 생각하는 집의 이상적인 모습이랑은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타지 생활하면서 유일하게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학가 신쪽방촌’은 한양대 만이 아닌 전국 대학가가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는 건 임대업자이고, 주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방 출신 청년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제게 집은 ‘씻는 곳’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요.
집에서 잠만 자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30분 집에 있을까 말까 하거든요.

어차피 이 집에서 오래 살아봤자 2년이니,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때까지만 ‘버티자’고 생각해야죠.”

- 한양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고영욱(31)씨

“ 묵인과 방치의 결과인 ‘쪼개기 원룸’은 지금 전 대학가에서 손을 쓸 수 없는 수준이에요.
청년 주거 시장에 기숙사나 역세권 청년주택과 같은 경쟁력 있는 주택이 대량 공급돼 시장 질서를 바꿔야 열악한 조건의 불량 주거가 자연 도태될 겁니다.“

취재이혜미 기자, 이진희 기자, 박상준 기자, 박소영 기자

사진홍인기 기자, 서재훈 기자

영상한설이 PD, 현유리 PD, 이현경 PD, 전혜원 인턴PD

인터랙티브 기획/제작안경모 팀장, 박인혜, 백종호, 오준식, 개발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