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원룸, 오피스텔 기준의 가장 작은 면적이 23.1㎡(7평)이었지만 최근엔 나라에서 권고한 1인 가구 최소주거기준 14㎡(4.2평)보다도 더 작은 12㎡(3.6평)까지도 ‘풀옵션 빌트인’(싱크대와 냉장고, 인덕션, 세탁기와 에어컨, 붙박이 책상 등)을 갖췄다는 이유로 임대료를 높여 거래된다.”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 평균 월세
(출처: 다방, 단위: 만원)
서울 대학가 원룸촌이 ‘신(新)쪽방촌’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 대학가에는 축적한 자산이 없는
청년 세대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돈을 버는
‘빈곤 비즈니스’가 한창이다.
불법
불법 쪼개기 건물82.5%전수조사 대상 건물
79채 중 65채
한국일보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한양대 인근 원룸 건물의 ‘불법 쪼개기 실태’를 전수 조사했다. 원룸 전체 건물 751채 가운데 10가구 이상 거주하는 79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 봤더니, 그 중 65채(82%)가 불법 쪼개기 한 ‘신쪽방’인 것으로 드러났다. 10채 중 8채 상당이다. 이미 위반건축물으로 등록되어 있는 경우도 28채(35.4%)에 달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원룸에 버젓이 비싼 월세를 내고 살면서도 ‘주거 빈곤’의 경계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청년들의 현주소다.
‘우편함’과 ‘계량기’는 알고 있다.
외관으로 확인 가능한 우편함과 계량기는 실제 한 건물에 몇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취재팀은 사근동을 드나들며 건물의 우편함과 계량기 수를 기입해 건축물 대장과 일일이 대조했다.
1가구 단독주택이 34가구 원룸으로...
34가구
층당 평균 11가구
1층에 카페가 있는 한 건물은 2층부터는 원룸으로 사용되고 있다. 입구에는 34개 우편함이, 외벽에는 34개 가스계량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각 방문에 붙은 호수도 이와 일치했다.
34가구가 사는 이 건물은, 건축물대장 상으로는 단 한 가구만이 사는 단독주택과 근린생활시설로 기재돼 있다.
2~4층은 독서실로 등록되어 있지만, 독서실의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 없다. 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법정 주차장을 필수로 지어야 하는데, 아까운 땅에 주차장을 짓느니 근린생활시설로 위장해 실제로는 원룸을 만드는 편법이다. 해당 건물은 이미 올 1월에 위반건축물로 적발됐으나, 버젓이 원룸 임대업을 계속하고 있다.
불법 쪼개기 방식
불법 쪼개기는 크게 2가지 방법으로 많이 이뤄진다.
1. 노후한 다가구 주택을 리모델링 하면서 원래 존재하지 않는 방을 둘이나 셋으로 나눠 ‘호수(戶數)’ 만들기
2. 신축 건물을 지으면서 법에 맞게 사용 승인을 받은 뒤, 이후 더 많은 세대로 나눠 방을 쪼개기
쪼개기 전월 50만원월세 50만원 x 1가구
쪼갠 후월 120만원월세 30만원 x 4개 원룸
2.4배
올해 9월 말 기준, 서울의 불법 방 쪼개기 적발 누계는 682건이다. 지난해까지 적발됐으나 시정되지 않고 있는 건수(604건)와 올해 새롭게 적발된 건수(78건)를 합친 수치이다. 불법 방 쪼개기는 적발돼도 대부분 시정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명확하다. 현행 건축법상 방 쪼개기 된 건물에 대해서 시정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보통 이행강제금보다 원룸 쪼개기로 벌어들이는 월세 수익이 훨씬 많다 보니 실효성에 뚝 떨어진다.
유리벽 화장실에 3평짜리 원룸…
추락하는 주거 환경
- 23.1㎡(7평)
- 1990년대 후반 원룸, 오피스텔 기준의 가장 작은 면적
- 14㎡(4.2평)
- 국가에서 권고한 1인 가구 최소주거기준
- 12㎡(3.6평)
- 2019년 현재
현재 원룸들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불법 쪼개기 원룸’ 내부. 4.5평 방엔 세탁기, 냉장고, 전기조리기구, 책상, 침대가 빽빽이 놓여 있다.
공간이 없어 싱크대 위에 드라이기, 로션 등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다.
원룸들에 하나 둘 불이 켜지는 16일 오후 10시가 되면 어떤 음향기기도 켜지 않았지만, 방엔 온갖 소리가 모여들었다. 어디선가 텔레비전 소리는 벽을 뚫고 넘어왔고 옆방의 중국인 유학생 통화 소리까지 고스란히 전달됐다. 같은 층 누군가가 ‘쾅’ 하고 문을 닫으면, 다른 방에도 진동이 울렸다.
세면대와 맞붙어 있는 변기는 앉기 힘들 정도로 여유가 없었고, 욕실에 환풍기나 창문이 없어 침대 위 벽에는 검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지금, 진짜 집에 살고 있나요?
쪽방과 원룸 사이… 경계에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
취재진은 “당신의 원룸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 1,000통을 직접 우편함에 배달했고, 접수된 제보를 통해 ‘신(新) 쪽방’에 사는 이들과 연락이 닿았다.
제보자들과의 인터뷰를 채팅 형태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채팅 화면에 대고 스크롤 하시면 인터뷰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신의 '집'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학가 신쪽방촌’은 한양대 만이 아닌 전국 대학가가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는 건 임대업자이고, 주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방 출신 청년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제게 집은 ‘씻는 곳’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요.
집에서 잠만 자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30분 집에 있을까 말까 하거든요.
어차피 이 집에서 오래 살아봤자 2년이니,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때까지만 ‘버티자’고 생각해야죠.”
“ 묵인과 방치의 결과인 ‘쪼개기 원룸’은 지금 전 대학가에서 손을 쓸 수 없는 수준이에요.
청년 주거 시장에 기숙사나 역세권 청년주택과 같은 경쟁력 있는 주택이 대량 공급돼 시장 질서를 바꿔야 열악한 조건의 불량 주거가 자연 도태될 겁니다.“